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리드리히 대왕/생애 (문단 편집) === 폴란드 분할 === 이후 [[1772년]] [[폴란드 분할]]에 참여[* 폴란드는 이미 18세기 초반부터 이미 러시아의 위성국이었기 때문에 러시아가 폴란드를 통째로 흡수하기 전에 오스트리아와 합세하여 견제한 것이다.]해 [[서프로이센]]을 획득하여 본토인 브란덴부르크와 동쪽의 [[프로이센 공국]]을 육로로 연결했고, 이로써 ''''프로이센왕''''으로서의 칭호도 프로이센 '''공왕'''(König '''in''' Preußen)에서 프로이센 '''국왕'''' (König '''von''' Preußen)으로 바꾸었고[* 'von'이 아닌 'in'을 쓰게 된 이유는 신성 로마 제국에서 [[국왕]]은 슬라브 문화권인 [[보헤미아 왕국|보헤미아 국왕]]뿐이었기 때문. 명나라 봉작체계의 공식적인 국왕이 조선국왕 뿐인것과 비슷하다. 신성로마제국 황태자의 봉호인 [[로마왕]]도 국왕은 아니었다. 그래서 할아버지인 [[프리드리히 1세(프로이센)|브란덴부르크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레오폴트 1세]]와 협상할 당시 본토인 브란덴부르크가 아닌 신성 로마 제국 바깥의 프로이센 공국의 이름을 빌려 공왕을 칭했고 그래서 'von'(국왕)이 아닌 'in'(외공내왕)을 사용해야했다. 여담으로 [[독일어]]에서 'in'과 'von'의 차이는 크다. [[동아시아]]로 치면 'in'은 [[외왕내제]]와 비슷한 표현.], 국민들로부터 '''대왕'''이라는 칭호도 헌사받았다. 그리고 [[바이에른 계승 전쟁]]으로 오스트리아를 견제하는 등 프로이센을 유럽 북부의 최강자로 자리매김시켰다. 이처럼 화려한 전적은 단순히 군사력의 승리로만 얻어낸 것이 아니라 학술, 교육, 복지 등을 크게 발전시켜 프로이센을 단순한 군사국가가 아닌 진정한 중유럽의 강국으로 끌어올린 결과이기도 했으며 계몽군주답게 [[미국 독립전쟁]] 때 자신의 장교들을 파견, [[미군|대륙군]]을 크게 강화하는데도 한 몫 했다. 프리드리히 빌헬름 폰 슈토이벤이 대표적.[* 동성애자였던 폰 슈토이벤은 동성애 혐의로 자신에 대한 수사가 진행될 것 같다는 기미를 보고, 미국으로 도망친 사람인데 웃긴 건 당시 프로이센의 군주인 프리드리히 대왕부터가 동성애자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